자폐 초기증상(조기발견, 초기신호, 체크리스트,자폐와 발달지연의 차이, 부모의 마음가짐)
"조금 더 기다리면 괜찮아질까요" — 자폐 초기 신호를 알아가게 된 이야기
아이가 말을 늦게 시작하고 혼자 노는 시간이 많다는 걸 처음 느꼈을 때, 저는 걱정과 기대 사이에서 계속 흔들렸습니다. 주변에서는 흔히 이렇게 말하죠. "남자아이는 원래 말이 늦어요." "크면서 좋아질 거예요." 실제로 이 말이 맞는 경우도 많습니다. 모든 언어 지연이 자폐를 의미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 "조금 더 기다리자"는 생각 때문에 필요한 평가와 지원이 늦어지는 경우요.
처음엔 그냥 "느린 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자폐를 의심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아이마다 발달 속도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었기 때문에, 말이 조금 늦어도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따라잡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름을 불렀을 때 반응하는 날도 있고 안 하는 날도 있었는데, 그것도 그냥 '컨디션 문제겠지' 하고 넘겼습니다.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것도 성격이 조용해서 그런 거라 여겼고요.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항상 같은 방식으로만 반복하는 것도 '원래 애들은 좋아하는 놀이를 반복하지 않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한두 가지 행동만 떼어놓고 보면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었거든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이 바뀐 건 또래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서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장난감을 발견하면 부모에게 "이거 봐" 하면서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이는 재미있는 걸 발견해도 저에게 보여주거나 함께 나누려는 모습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걸 '공동주의(joint attention)'라고 부르더군요. 아이가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부모를 쳐다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부모도 함께 보면서 웃는 흐름 — 이게 일반적인 발달에서는 자연스럽게 나타나는데, 저희 아이는 물건은 계속 보면서도 저를 잘 보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말을 얼마나 하느냐"보다 "사람과 관심을 주고받는 방식이 어떤가"**가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인터넷 체크리스트를 찾아보고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던 시기
그 뒤로 자폐 초기증상을 검색해서 체크리스트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오히려 더 불안해졌습니다. 항목을 하나씩 읽다 보니 아이에게 해당되는 행동만 눈에 들어왔고,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사소한 행동까지 전부 자폐와 연결지어 생각하게 됐습니다. 반대로 어떤 항목에 해당하지 않으면 '그럼 괜찮은 건가' 하고 잠깐 안심하기도 했고요. 지금 돌아보면 체크리스트를 진단표처럼 점수 매기듯 사용했던 게 가장 큰 시행착오였습니다.
그래서 이후로는 체크리스트를 점수표가 아니라 관찰 기록표로 바꿔서 쓰기로 했습니다. 이름을 불렀을 때 반응하는지, 눈맞춤과 표정 교환은 어떤지,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하는지, 말을 어떤 목적으로 쓰는지, 놀이가 반복적인지, 가족과 관심을 나누려고 하는지 — 이런 것들을 하루가 아니라 일정 기간에 걸쳐 반복되는 패턴으로 지켜보려고 했습니다.
그맘때 아이들은 보통 이렇다고 하더군요
찾아보면서 알게 된 건, 시기마다 살펴볼 만한 발달의 결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정리해본 걸 공유하면 이렇습니다.
**돌 전(0~12개월)**에는 부모 얼굴을 바라보고 미소에 반응하는지, 이름을 부르면 반응하는지, 까꿍놀이를 좋아하는지가 보통 기준이 됩니다. 눈맞춤이 매우 적거나 사람보다 물체에만 오래 집중한다면 관찰이 필요한 신호라고 하더군요. 물론 이 시기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는 단서가 늘 붙습니다.
12~24개월 사이는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부모가 가리키는 곳을 함께 보기, 간단한 단어 사용, 장난감을 보여주려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가리키기 행동이 거의 없거나, 혼자 반복 놀이를 오래 하거나, 이름 반응이 일관되지 않는다면 눈여겨볼 부분이라고 합니다.
24~36개월부터는 간단한 대화, 역할놀이, 감정 표현이 늘어나는 시기인데, 대화를 이어가기 어렵거나 같은 질문을 반복하거나 특정 관심사에만 몰입하는 모습, 변화에 강한 스트레스를 보이는 모습이 함께 나타난다면 상담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합니다.
만 3~5세가 되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생활을 하면서 또래와의 차이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지만 방법을 잘 모르거나, 놀이 규칙을 이해하기 어려워하거나, 농담이나 비유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지속된다면 이때도 상담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자폐와 단순한 발달 지연, 뭐가 다른 걸까
이 부분이 저는 가장 헷갈렸습니다. 찾아보니 완전히 정확한 구분은 아니지만 대략 이런 경향이 있다고 하더군요 — 단순 언어발달 지연이라면 이름 반응이나 공동주의, 가리키기, 사회적 미소가 대체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자폐스펙트럼에서는 이런 부분에서 어려움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참고용이고, 실제 감별은 전문가의 종합 평가가 필요하다는 걸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습니다.
병원에 가야 하나, 고민했던 시간
"괜히 갔다가 별것도 아닌데 걱정한 거면 어떡하지"라는 생각과 "혹시 예상 못 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계속 저를 붙잡았습니다. 결국 제가 참고했던 기준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 12개월 이후에도 이름 반응이 거의 없다
- 12개월 이후에도 가리키기 행동이 없다
- 16개월 이후에도 의미 있는 단어가 거의 없다
- 24개월 이후에도 두 단어 문장을 거의 쓰지 않는다
-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이 계속된다
- 반복 행동과 감각 특성이 함께 나타난다
이 중 여러 개가 겹친다면, 스스로 결론을 내리기보다 전문가와 상담해보는 게 좋다고 하더군요. 저는 아이의 발달을 부모 혼자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나서야, 오히려 마음이 조금 정리됐습니다.
자폐라는 말을 들은 날, 나는 아이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날의 병원 대기실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형광등이 유난히 밝았고, 대기 번호판의 숫자가 넘어가는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습니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저는 속으로 '별거 아닐 거야, 그냥 조금 느린 거겠지'라고 계속 되뇌고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차분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자폐스펙트럼장애 소견이 있습니다." 그 뒤로 무슨 설명을 들었는지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단어들은 들렸는데 의미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하는 척했지만, 손이 떨려서 글씨가 제대로 써지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며칠
집에 돌아와서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저는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슬픔이라기보다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감정이었습니다. 아이가 달라진 것도 아닌데, 저는 마치 어떤 걸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됐는데, 그건 실제로 아이를 잃은 게 아니라 제가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던 '미래의 아이'를 떠나보내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커서 친구들과 뛰어놀고,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제가 상상했던 그런 모습들이요.
며칠 동안은 자책이 가장 컸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임신 중에 뭔가 놓친 게 있었나.' '더 일찍 알아챘어야 했나.' 답이 없는 질문들을 계속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이 상황이 힘들다고 느끼는 마음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게 저 자신도 이상하게 느껴졌거든요.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나쁜 부모인가' 싶었습니다.
아이를 볼 때마다 진단명이 먼저 보이던 시기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진단을 받고 나서 한동안은 아이를 볼 때 아이가 아니라 '자폐'가 먼저 보였습니다. 아이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면 '저게 상동행동이구나' 하고 생각했고, 혼자 노는 모습을 보면 '저게 자폐의 특징이지' 하고 해석했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우리 애 특이하네' 하고 웃어넘겼을 행동들이 전부 진단명이 붙은 목록의 항목처럼 느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가 저에게는 가장 힘들었던 때였습니다. 제가 사랑하던 아이 대신, 어느새 '자폐를 가진 아이'라는 렌즈로만 아이를 보고 있었으니까요.
시선이 바뀌기 시작한 순간
변화는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 시작됐습니다. 어느 날 저녁, 아이가 좋아하는 자동차를 가지고 놀다가 갑자기 저를 돌아보며 활짝 웃었습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냥 순수하게 즐거워서요. 저는 그 순간 무언가 이상한 걸 깨달았습니다. '이 아이는 지금 행복하구나. 진단명과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 진짜 행복해하고 있구나.'
그때부터 조금씩, 아이를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이해해야 할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손을 흔드는 건 흥분되거나 기쁠 때 나오는 아이만의 표현 방식이었고, 혼자 노는 시간은 아이에게 필요한 회복의 시간이었습니다. 같은 행동인데도, 제가 그걸 '문제'로 보느냐 '아이의 언어'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받아들인다는 것의 실제 모습
'수용'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가 겪어보니 그건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을 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날도 있었고, 여전히 힘든 날도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게 되는 순간이 문득 찾아오기도 했고, 반대로 아이의 작은 성취에 세상 누구보다 크게 기뻐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제가 배운 건, 수용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결심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다시 선택하는 태도에 가깝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로 선택하고, 내일 또 그렇게 선택하고 — 그런 반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반복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애써 '수용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자연스럽게 아이를 아이 그대로 바라보게 됐습니다.
지금, 아이를 바라보는 방식
지금도 저는 가끔 그날의 대기실을 떠올립니다. 그때의 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슬픔도, 죄책감도, 혼란스러움도 다 지나가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 저는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재는 대신, 아이 자신의 속도와 방식을 존중하게 됐습니다.
지금 막 진단을 받고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있다면, 지금 느끼시는 슬픔이나 혼란이 잘못된 감정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감정을 억지로 서둘러 지나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분도 언젠가 아이의 웃는 얼굴에서 진단명이 아니라 그냥 여러분의 아이를 보게 되는 순간이 올 거라고,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 이 글은 부모가 아이의 발달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드리기 위한 개인적인 경험과 정보이며,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진단하기 위한 자료는 아닙니다. 발달에 대한 걱정이 있다면 소아청소년과나 발달 관련 전문기관에서 상담과 평가를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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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th ed., Text Revision; DSM-5-TR)
- World Health Organization,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11th Revision (ICD-11)
- Hyman, S. L., Levy, S. E., & Myers, S. M. (2020), Identification, Evaluation, and Management of Children With Autism Spectrum Disorder, Pediatrics
-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 Autism Spectrum Disorder
- 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 (NIMH), Autism Spectrum Disord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