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개월 자폐 증상|말은 하는데 왜 자폐가 의심될까? (36개월 발달 핵심 영역, 대화의 어려움, 반복언어, 놀이의 단서, 36개월 관찰 영역)

 

말은 잘하는데, 왜 자꾸 마음에 걸렸을까 (36개월 자폐 증상)

"말도 잘하는데 뭐가 걱정이야?"

어린이집 선생님이 처음 상담을 권하셨을 때, 저는 속으로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무렵 아이는 "엄마 물 줘", "자동차 갖고 싶어", "이거 먹을래", "엄마 같이 가"처럼 세 단어 이상의 문장을 곧잘 말하고 있었거든요. 발음도 또렷했고, 단어 수도 또래에 비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자폐라는 말을 듣는 순간 반사적으로 '그건 말을 전혀 못 하는 아이들 얘기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대화가 아니라 '혼잣말'에 가까웠던 순간들

며칠을 곱씹다 보니 마음에 걸리는 장면들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제가 "오늘 어린이집에서 뭐 했어?" 하고 물으면 아이는 "자동차"라고 대답은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대화가 끝났습니다. "자동차 가지고 놀았어?"라고 다시 물어도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계속하거나, 제가 방금 한 말을 그대로 따라 하곤 했습니다.

처음엔 '기억력이 좋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좋아하는 자동차 이야기가 나오면 혼자서도 한참을 말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건 정확히는 '대화'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에 가까웠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질문과 무관하게 같은 대사를 반복하는 걸 '반향어(echolalia)'라고 부른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다만 반향어 자체가 곧바로 문제는 아니라고 하더군요 — 아이들은 원래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 하기도 하니까요. 중요한 건 그 말을 실제 상황에 맞게, 의미 있게 쓰고 있는지였습니다. 예를 들어 "주스 먹을래?"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 하면서 실제로 주스를 원하는 거라면 그건 나름의 의사표현입니다. 하지만 질문과 상관없이 좋아하는 대사만 반복한다면 얘기가 다릅니다.

미국소아과학회(AAP)의 임상 보고서에도 자폐 선별의 핵심은 언어의 양이 아니라 사회적 의사소통의 질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말을 잘하는 아이도 이 부분에서는 얼마든지 어려움을 보일 수 있다는 겁니다.

놀이에서도 비슷한 게 보였습니다

아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 자체는 잘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가 출발해요, 주차장에 들어갑니다" 같은 식으로 상황을 만들어 노는 것보다는, 바퀴를 유심히 들여다보거나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쪽에 훨씬 오래 머물렀습니다. 자동차를 일렬로 줄 세워놓고 순서를 바꾸면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는 모습도 자주 봤습니다. 제가 인형에게 밥을 먹이는 시늉을 하며 놀이에 끼어들려고 하면 관심을 보이기는커녕 제 손을 밀어내고 다시 원래 하던 놀이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이것도 처음엔 그냥 '집중력이 좋은 아이'라고만 생각했던 부분이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주변의 반응이었습니다. "말 잘하는데 뭐가 걱정이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제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 아닌가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그냥 말이 더 늘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단어 수가 느는 것과, 그 말로 사람과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일주일 동안 이렇게 관찰해봤습니다

막연히 불안해하기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보면 되는지 알고 싶어서, 저는 일주일 정도 아이의 하루를 유심히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특별한 검사 도구 없이도 집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① 이름을 불렀을 때 반응 — 다른 일에 몰입해 있을 때 이름을 불러보고, 몇 번 만에 돌아보는지 며칠에 걸쳐 확인했습니다. 매번 반응이 다르다면 그 자체가 정보입니다.

②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가져오는 행동 — 새로운 장난감이나 그림책을 보여줬을 때, 아이가 그것만 보는지 아니면 제 얼굴을 한 번씩 확인하며 반응을 살피는지 봤습니다. 이걸 '공동 관심(joint attention)'이라고 부른다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③ 대화 주고받기 횟수 — 아이와 나눈 대화가 몇 번의 주고받기로 이어지는지 세어봤습니다. "이거 뭐야?" → "자동차" → "무슨 색이야?" → "빨강" 이런 식으로 두세 번 넘게 이어지는지가 중요한 지표였습니다.

④ 놀이 전환 반응 — 아이가 반복하던 놀이 방식을 살짝 바꿔보자고 제안했을 때 순순히 받아들이는지, 아니면 강하게 거부하는지 지켜봤습니다.

일주일간 기록해보니 ①과 ④에서는 어느 정도 반응이 있었지만, ②와 ③에서는 거의 매번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그 기록을 가지고 소아청소년과에 갔을 때, 막연히 "걱정돼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

물론 이런 모습이 한두 번 보인다고 자폐라는 뜻은 아닙니다. 아이마다 기질과 발달 속도가 다르니까요. 제가 배운 건, 한 가지 행동으로 결론 내리지 말고 여러 상황에서 비슷한 특징이 반복되는지를 차분히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반대로 "말을 반복한다고 무조건 자폐다"라고 단정하는 것도 성급한 판단입니다. 감각에 예민하거나 둔감한 반응(청소기 소리를 유난히 싫어하거나, 통증에 둔감해 보이는 것), 손을 흔들거나 몸을 흔드는 반복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특징 하나하나가 아니라, 사회적 의사소통과 반복적 행동이 여러 상황에서 함께, 반복적으로 나타나는지가 핵심입니다.

언제는 그냥 지켜봐도 되고, 언제는 상담을 받아야 할까

이 부분이 부모 입장에서 가장 판단하기 어려운 지점이라, 제가 소아청소년과에서 직접 들은 기준을 정리해둡니다.

  •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거의 없는 날이 계속된다
  • 재미있는 걸 발견해도 부모에게 보여주거나 공유하려는 행동이 없다
  • 대화가 두세 번 이상 이어지지 않고 매번 끊긴다
  • 놀이 방식이 몇 주째 거의 똑같은 패턴으로 고정되어 있다
  • 예전에는 하던 말이나 행동을 갑자기 하지 않게 됐다(퇴행)

이 중 한두 가지만 해당된다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되지만, 여러 항목이 겹치거나 특히 마지막 '퇴행'이 보인다면 미루지 말고 소아청소년과, 발달클리닉, 또는 소아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받아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로 AAP는 18개월과 24개월 정기 건강검진에서 M-CHAT-R/F 같은 표준화된 자폐 선별 도구를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는데, 36개월 즈음에도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같은 도구로 다시 확인해볼 수 있다고 안내받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돌이켜보면 가장 큰 시행착오는 '말을 하니까 괜찮겠지'라고 안심했던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걱정에 사로잡혀 아이의 모든 행동을 문제로만 해석했던 시기도 있었는데, 그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제가 찾은 답은 아이가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전체적으로, 그리고 며칠에 걸쳐 살펴보는 것, 그리고 막연한 불안이 아니라 구체적인 기록을 가지고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아이가 몇 단어를 말하는지보다, 그 말로 저와 무언가를 나누려고 하는지를 더 유심히 봅니다. 눈을 맞추는지, 웃긴 순간에 제 얼굴을 보는지, 놀이를 함께 나누려고 하는지 — 결국 이런 작은 순간들이 말의 개수보다 훨씬 많은 걸 알려준다는 걸 그때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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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부모가 아이의 발달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드리기 위한 개인적인 경험과 정보이며,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진단하기 위한 자료는 아닙니다. 발달에 대한 걱정이 있다면 소아청소년과나 발달 관련 전문기관에서 상담과 평가를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참고자료

  • 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 Identification, Evaluation, and Management of Children With Autism Spectrum Disorder
  • 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 Surveillance/Monitoring and Screening (M-CHAT-R/F 관련 권고 포함)
  •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Understanding Autism Spectrum Disorder